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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숏폼을 못 끊을까 3 – 숏폼의 숨은 청구서

왜 우리는 숏폼을 못 끊을까 3 – 숏폼의 숨은 청구서

앞선 글에서 숏폼이 어떻게 메인스트림 SNS의 주요사업으로 부상했고,

숏폼 소비가 우리 뇌에서 무슨 짓을 벌이는지까지 알아봤음.

이번 편은 단순히 시간 낭비 정도로 생각했던 숏폼 소비가

우리에게서 어떤 것을 뺐어가고 있는지에 대한 얘기임.

1. 집중력이 조각남

캘리포니아대 글로리아 마크 교수가 사람들이 하나의 작업에 방해받지 않고

얼마나 집중하는지를 수십년간 추적해서 어텐션 스팬(Attention Span)이라는 책을 썼음.

2004년엔 한 가지 일에 집중하는 평균 시간이 2분 30초였는데 2021년에 와선 47초까지 떨어짐.

이 추적실험의 인과관계가 숏폼 때문인 것은 아님, 다만 쉴 새 없는 알림, 열 개씩 켜둔 탭

현대인의 집중력은 너무 많은 정보에 의해 갈려나가고 있었음.

근데 숏폼은 이 정보 폭격을 극단으로 밀어붙인 형태임.

몇 초마다 완전히 새로운 주제, 새로운 장면이 끊김 없이 쏟아짐.

뇌가 하나를 채 붙잡기도 전에, 다음 게 밀고 들어와서 덮어씀.

숏폼에 익숙해지면 우리 뇌는 결국 한 가지에 오래 붙어있지 못하게 됨.

글 읽다 폰 켜고, 일하다 유튜브 켜고, 넷플릭스 보면서도 손은 딴 데 가 있음.

몇 초마다 새 자극을 주는 것에 뇌를 길들이니까, 긴 호흡 자체가 불가능해짐.

근데 공부, 독서, 몰입, 진짜 가치 있는 건 전부 긴 호흡을 요구함.

정작 중요한 걸 할 능력부터 깎여나가는 거임.

2. 긴 글을 못 읽는 뇌

인지신경과학자 매리언 울프의 책 ‘다시, 책으로(Reader, Come Home)’에 따르면,

읽기 능력은 인간이 내재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게 아님.

읽기, 특히 깊이 읽기는 타고나는 게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지는 능력임.

뇌는 자주 하는 행동에 맞춰, 그 일을 더 잘하도록 스스로 회로를 바꾸고 강화함.

반대로 안 쓰는 회로는 가차 없이 닫아버리기도 함.

쇼츠로 대충 훑어읽기(스캔)에만 익숙해지면, 깊이 읽는 회로가 서서히 퇴화함.

온라인에선 글이 조금만 길면 본문은 안읽고 요약만 읽는 사람도 많고

성인 중 절반 이상은 1년에 책 한 권도 안읽는다고 함.

요즘 문해력 저하가 사회 문제로 뜨는 것도 이 맥락이랑 무관하지 않음.

정보 흡수를 굳이 읽기로 해야하냐는 분위기도 있지만

같은 내용이라도 영상으로 보는 것과 글로 읽는 것은 명백하게 다름.

영상은 빠르고 쉽지만 얕게 지나감.

장면도 소리도 다 만들어서 보여주니까, 뇌는 그냥 받아들이기만 하면 됨. 편한 대신 뇌가 할 일이 없음.

정보를 받아들이는 속도도 영상이 정함. 이해가 안 돼도 화면은 그냥 흘러가버림.

글은 정반대임. 글자는 그 자체론 아무것도 안 보여줌.

뇌가 문자를 의미로 바꾸고, 앞뒤를 잇고, 빈틈은 추론으로 메워야 함.

읽는 내내 뇌가 능동적으로 일을 하는 거임. 중요한 데선 멈추고, 막히면 되돌아가고, 곱씹을 수 있음.

이 힘든 과정을 스킵하면서, 우리 뇌는 자연스럽게 얕게 배선되고 있는거임.

3. 지루함도 필요하다

신호등 기다릴 때, 엘리베이터 안, 화장실, 심지어 라면 끓는 3분.

사람들은 잠깐의 빈 시간도 못 견디고 반사적으로 폰을 켬.

잠깐의 지루함도 못 견디는 상태가 된 거임.

우리는 지루함을 그냥 낭비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게 아님.

뇌는 아무것도 안 하고 멍때릴 때 오히려 더 바빠짐.

겪은 일들을 정리해서 기억으로 저장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정보들을 서로 연결해보고,

“나 요즘 뭐 하고 살지” 하며 자기 자신을 돌아봄.

뇌과학에선 이렇게 쉴 때 켜지는 회로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고 부름.

좋은 아이디어나 안 풀리던 문제의 해답이,

책상 앞이 아니라 샤워할 때, 산책할 때, 멍하니 창밖 볼 때 툭 튀어나오는 게 바로 이것 덕분임.

문제는 우리가 그 스위치를 켤 틈을 스스로 없애고 있음.

빈 시간이 잠시라도 생기면 곧바로 스마트폰으로 손이 감.

결국 뇌는 하루 종일 자극을 받아내기만 하고, 그걸 정리하고 소화할 시간을 단 한 번도 못 가짐.

그렇게 우리는 늘 뭔가를 보고 있지만, 정작 생각은 점점 얕아짐.

반응만 하고, 정리는 안 하고, 돌아보지도 않는 뇌가 되어가는 거임.

4. 끓는 물 속 개구리

이 청구서의 가장 악질인 점은 아주 천천히 온다는 거임.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근의 나를 기준으로만 생각함.

어제랑 오늘이 비슷하니, 오랜 기간에 걸쳐 능력이 떨어지고 있어도 정작 본인은 잘 모름.

필자도 몇 년 전의 나와 비교해보면, 확연히 달라진 걸 느낌.

긴 영상, 긴 글, 조용한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는 게 어려운 일이 됐음.

생각없이 쇼츠를 스크롤 하면서 내리는 동안, 우리의 집중력과 인내심이 조금씩 흘러나가고 있던 것임.

그럼 이건 이제 영영 못 되돌리는 걸까? 다행히 뇌엔 희망적인 성질이 하나 있음.

근데 대부분의 사람이 숏폼 끊기에 도전했다가 실패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음.

다음 편에서는 정말 되돌릴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냥 끊기는 거의 다 실패하는지 다뤄봄.

출처

https://www.fmkorea.com/10176741070